■ 공모전 주제
‘청주시청사 활용방안‘
2012년 주민투표를 거쳐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이 결정되고 2014년 통합 청주시가 출범하였다. 1896년 충청도는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로 분리되었고, 1908년에 충주에 두었던 충청북도의 관찰부가 청주로 이전되면서 청주는 명실상부한 충청북도 제1의 도시가 되었다. 2014년 이후 꾸준히 성장한 청주시는 인구 100만에 가까운 도시가 되었다.
청주시의 성장사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맥을 같이해 왔다. 특히, 1960년대 경제성장기에 지어진 구청주시청사는 해방 이후 지역 행정의 중심지이자 보릿고개를 넘어 경제도약을 꿈꾸는 시민들의 여망과 실천이 담긴 곳이었다. 청주시는 충청북도에서는 처음으로 민간 건축전문가 제도를 도입하였고, 2020년에는 총괄건축가 제도를 도입하여 청주의 공공건축과 도시환경을 개선해오고 있다.
2020년 7월에는 오랜 준비를 거쳐 청주시청 새 청사 국제공모를 실시하여 ‘ㄷ자’ 형태로 청주시청 본관동을 감싸안는 듯한 노르웨이 건축가 스노헤타의 안을 선정, 새 청사 건립을 추진해 왔다. 당시 청주시청 새 청사 국제공모는 구시청사를 보존하면서 청주의 미래 비전을 담아내는 국제공모전으로 공모전의 준비에서 진행 그리고 결과에 이르기까지 국내 건축계의 주목을 받았다. 건축계에서는 구시청사가 담고 있는 지역사회에서의 역사와 청주시민의 삶 그리고 건축사적 가치의 빼어남에 주목했고, 지역사회와 문화재청은 새 청사를 짓더라도 청주시의 성장사를 온전하게 담고 있는 구시청사의 보존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건축가 스노헤타의 당선안은 청주시민의 여망을 훌륭하게 담아냈고, 시는 100억에 가까운 설계비를 지급하며 설계를 마무리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새 시장의 당선으로 상황은 비관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정치권의 지형변화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삶은 지속되어야 하는데 새 시장은 당선된 후 청주시청 본관동이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설계가 마무리된 현상설계 당선안을 백지화하고 새로운 공모를 통해 구시청사를 철거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청주시민은 물론 각계의 전문가와 문화재청에서도 청주시청사 본관동은 청주시와 청주시민의 삶과 현대사를 담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아 문화재 등록을 권고했지만, 새 시장의 철거 의지는 바뀌지 않고 있다.
2022년 6.1지방선거 이후 본관을 철거하겠다는 새 시장과 시민의 삶과 역사가 담긴 시청사를 보존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와 전문가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첨예하게 맞붙었다. 현실은 불행히도 강력한 행정력을 가진 시장의 의지가 관철될 순간에 직면해 있다.
구청주시청사 보존을 위해 청주시민과 각계 전문가와 뜻과 행동을 함께 해왔던 ‘(사)근대도시건축연구와실천을위한모임’은 2023년 근대도시건축디자인공모전의 대상지로 ‘청주시청사’를 선정했다.
그동안 근대건축물의 보존과 철거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정치적 판단에 의해 철거된 조선총독부 본관과 옛 서울시청의 훼손 등 역사유산의 주인인 시민사회와의 대화와 논의를 거치지 않은 정치적 결정에 의한 철거는 건축물의 보존이 단순히 건물의 물리적 상태 유지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전문가들이 동시대를 함께하는 시민들과 어떻게 공유하고 확산시켜 나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남겨주었다.
구청주시청사뿐 아니라 청주시청사가 위치한 곳은 청주 도시구조의 핵심으로서 청주 근현대사를 같이한 모든 이의 삶이 담긴 기억의 장소이며, 이와같은 건축과 장소는 우리가 사는 도시 곳곳에 산재해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또 다른 과제, 구청주시청사는 기존의 해법을 넘어서는 또 다른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모두가 주목했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것 같았던 설계공모 당선안이 조만간 이뤄질 구청주시청사의 철거와 함께 사라질 운명을 맞이한 시점에서 구청주시청사를 2023년 근대도시건축 디자인 공모전의 대상지로 삼은 것은 구청주시청사의 보존에 이구동성으로 뜻을 모았던 시민사회와 행정, 그들의 뜻에 적극 호응했던 국내외 건축가들과 그들의 작업, 철거에 직면하면서도 시민의 삶의 현장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지난 시간과 노력이 쉽게 잊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구청주시청사의 보존과 철거’와 같은 사례는 언제든지 다시 반복될 수 있고, 어쩌면 전국적으로 도미노 현상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개발의 시대를 넘어 오늘을 사는 건축가라면 보존과 철거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공존의 해법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공모전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건축을 업으로 삼는 분들은 ‘구청주시청사’의 보존과 철거에 대한 가치 판단과 논쟁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며, 건축가가 무엇을 놓쳤고, 우리가 무엇을 더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를 제시해주기 바란다.
시청이라는 공공업무공간의 한계를 넘어 자유로운 용도와 기능을 추가 제안할 수도 있다. 옛 본관동을 보존하는 태도와 새로운 건축이 만나는 방법을 통하여 응모자의 철학이 드러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제한된 용도를 넘어 창의적인 쓰임과 해법을 제안함으로써, 기성세대가 제출하였던 공모안들과 보존을 위한 노력의 한계를 뛰어넘기를 기대한다.
■ 공모전 개요 및 일정 등
특선
청주 기록의 배
The Ship of Record
신동휘 ㅣ 정수이 ㅣ 강준영
◆ 작품 개요
사라진 지역성, 파편화
우리는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 자연과 인문, 농촌과 도시가 고루 섞였음에도, 청주는 어떻게 무색무취의 도시가 되었는가? 근대화와 산업화 속에서, 청주는 도시 맥락에서 벗어난 개발과 무분별한 팽창과 삽시간에 세워진 새동네들은 도시 공동체의 분절을 불러오며 지역의 정체성을 흐려왔다. 결국 우리는 시민들이 공유하는 공동체의식과 정체성의 부재 속에서 시청의 철거를 목격한다. 대상지는 도시 팽창의 힘으로 생겨난 싱크홀처럼 보인다. 인근의 상당로와 사직대로, 과거의 청주역 철도는 청주의 발전을 이끈 축임과 동시에 도시를 파편화 시키고 중앙동 일대를 쇠락시키는 통로로 작용했다. 또한 현 시청사는 중심상권인 성안길에서 이어지는 보행 동선을 이어받지 못하고, 국립현대미술관과 청주대학교, 충북도청을 지나며 광역도시를 연결하는 상당로의 흐름을 흘려보낸다. 현 시청은 동서로의 보행자 흐름과 무심천-우암산의 자연의 축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 ‘시민 없는 시청’의 역설을 낳았다.
기록 기반 도시 커뮤니케이션
우리는 이곳에 시민의 기록과 기억을 보존하면서, 변화하는 도시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청주의 정체성과 지역성을 담는 기억의 중심을 만든다. 해체의 축이었던 사직대로와 상당로를 모음의 축으로 발견하고, 시청의 장벽은 해체된다. 이에 이 프로젝트에서는 "기록"하는 행위에 주목한다. 도시의 정체성이란, 곧 시민들의 기억이다. 이곳은 시민들의 무형의 기억을 유형의 기록으로 모은다. 기록은 정적인 텍스트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상, 사진, 회화, 음성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곳에서 생산, 보존, 공유된다. 즉, 이는 시민들의 기억과 청주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 공유하는 도시 단위의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내며, 이곳은 파편화된 청주의 동네 사이를 봉합하고 견고해진 공동체를 토대로 정체성과 지역성을 찾아간다.
배치와 프로그램
우리가 필요한 것은 건물이 아닌 도시조직이다. 따라서 이곳은 주변의 맥락을 존중하면서, 단절된 흐름이 이어지는 공간이자 머무르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에 주변과 비슷한 높이의 작은 매스들이 간격을 두고 배치되며 기존의 흘려보내던 중앙로와 상당로의 흐름을 잇고, 성안길 – 시청 – 청주대학교의 보행축과 무심천-우암산의 자연축을 연결한다. 또한 동적이고 빠른 남서측의 분위기, 비교적 정적이고 느린 북동측의 분위기를 따라 매스에 매체별로 프로그램을 배치하여 각 매체에 따른 기록의 생산, 보존, 공유가 일어나도록 한다. 이 때 매스 사이에서 발생한 한옥의 중정을 닮은 4개의 마당은 시민들이 모이고 기록이 융화되는 장소가 되며 마당을 향해 매스를 낮추어 위요감을 덜어낸다. 이러한 건물과 마당은 사이트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크와 보행로를 통해 하나의 다채로운 흐름으로 연결된다.
시청사의 재해석
기존의 시청사와 신축 매스는 개방과 투과의 맥락에 따라 재해석된다. 기존 시청사가 가진 콘크리트 아치의 아케이드가 가지는 개방성의 맥락은 새로운 재료인 철골로 재해석되며, 배의 난간을 닮은 파사드의 난간 또한 데크의 철제 난간으로 반복된다. 한편 기존의 솔리드한 콘크리트를 떠나 신축 철골조 건물들은 빛이 투과되면서 더욱 가벼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타공판으로 감싸지며 내외부의 시각적 경계를 흐린다. 또 행정중심의 장소로 일률적으로 분리된 층에서 벗어나 각 건물들 내부는 층간의 보이드로 연결되어 소통과 연결성을 강화한다. 즉 이러한 건축의 표현은 기존의 장벽이자 관료적 공간이었던 시청이, 미래에 어떻게 시민들의 공간이 되고 그 기록을 담는 공간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기록의 축적과 순환
우리는 시민들의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단편화된 청주의 모습들을 텍스트, 음성, 미술, 영상, 이미지 등 다양한 유형의 매체들로 기록하여 보존하고자 한다. 도시구조와 시민의 구성이 점차 변할지라도, 이렇게 보존된 기억들은 변하지 않는 영속성을 갖는다. 이는 단순히 데이터로서 보관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모인 기억들은 시민들에게 전시되어 과거를 상기시켜주기도 하는 한편, 이들에게 다시 창작의 씨앗이 되기도 하며 기억의 순환, 즉 끊어지지 않는 연속적인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간다. 결국 우리가 제안하는 것은 단순한 문화체험시설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공동체를 만드는 닻이다.